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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서막을 알리는 우리집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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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내리던 봄비가 그쳤다.

그 바람에 봄꽃들이 생기가 한층 더 느껴진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다른 데 봄꽃에 눈 돌리는 동안 

우리 집 정원이 수목원 버금가는 화원이 되어 있었다. 

 

 

어느 해 봄에도 이렇듯 화사하게 살구꽃이 핀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문득 탐스러운 살구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6월 중순에야 그 일이 마무리된 것이다.

그해는 봄을 잃어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봄이 오는 매 순간을 시시각각 느끼며, 관조하게 되었다.

 

봄의 전령사라 일컫는 매화가 개화할 

때를 맞춰 목련도 몽우리를 맺는다.

한 동안 솜털 보송한 몽우리는 쉬이 터질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몽우리를 터뜨리고 하얀 속살을 내비친다.

이때부터는 '누가 누가 먼저 개화하나' 내기라도 하듯이 우후죽순 꽃을 피운다.

  

지난가을에 미처 떨어지지 못한 모과가

그나마 자양분을 섭취한 덕분인지

땅바닥에 떨어져 짙은 흑갈색으로 산화한 모과와는 때깔이 사뭇 다르다.

어느새 모과나무에도 새순이 돋기 시작한다.

 

동백나무 씨앗 껍질이 꽃처럼 열렸다.

동백이 꽃 피고 나면 관심을 거둬들이니

이런 광경은 생경하다.

 

동백나무 가지 위에 직박구리 한 마리가 

꽃잎과 잎을 번갈아 찧어보기도 하며 잘 놀고 있다.

겨우살이를 잘했는지 오동통하게 살이 쪄 보인다.

 

오늘은 작정하고 집 뜰에서 갖가지 꽃을 구경하는 호사를 누린다.

봄꽃 마중이랍시고 수목원이고, 교외로 나돌던 일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행복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

 

 

훨훨 새 한 마리 날아와 우리 뜰 매화나무에서 쉬네
진한 그 매화향기에 끌려
반갑게 찾아왔네.
이곳에 머물고 둥지 틀어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꽃은 이미 활짝 피였으니
토실한 열매가 맺겠네. 

다산이 쓴 영락없는 '매조도'다.

가는 곳마다 직박구리가 있는 것을 보니 한 두 마리가 아닌가 싶다.

한참 동안 지켜보는 나를 위해 몸짓까지 하며 머물러주었다.

 

 

우리 뜰에 봄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열흘 가는 꽃이 없다'는 말처럼 

먼저 핀 꽃은 이미 시들고 있지만,

뒤질세라 끊임없이 새로 피는 이맘때다. 

머지않아 보게 될 연둣빛 창연한 비원을 설레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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