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에서 펼쳐 든 유선경 작가님의 <어른의 어휘력>을
재밌게 단숨에 읽었다.
책 소개
다수의 저서와 라디오 방송 작가 등 30년 넘게 글을 쓰고 있는 저자는 어른다운 어휘력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적재적소의 일상 사례와 주석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문장에서 어휘가 보여주는 의미나 어감의 섬세함과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된다.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을 보여준 책이다.
책 속으로
#1
고생 끝에 낙이라는 등 어설픈 소리 믿지 마.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너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을 쉽고 만만한 것들로 때우려 하지 말고
똑바로 쳐다봐. 밑바닥까지 바라봐.
네가 온 몸으로 견뎌 온 것들이 쌓여 너를 만드는 거야.
같잖은 희망의 노예가 되지 말고 성장과 자유의 즐거움을 누려봐.
내 어린 친구여, 부디 아모르파티!(Amor fati)!
아모르파티는 독일 철학자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용어로 '운명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중된 실업난에 허덕이며 고단한 일상에 지친 내 아들과 모든 취준생들에게 들려주어 위무하고 싶다. 아모르파티!
#2
'한 번도 사물을 제대로 본 적이 없음'을 한 마디로 바꾸면 무관심이다.
관성, 타성, 건성이다. 그가 더디어 그것들에서 탈출했을 때 인상주의는 시작됐다.
빌려온 남의 눈이 아니라 내 눈으로 대상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신비와 환희에 가득 찬 기쁨을 맛보며 오롯이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중략...)
자신의 어휘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 아름답다, 놀랍다, 멋지다, 좋다 등 알고 있는 찬탄의 어휘를 모조리 동원해도 입안이 빈 동굴처럼 허전하다. 그리하여 압도적인 풍경 앞에 선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마는 것처럼 기껏 이런 말밖에 못 하는 것이다.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
저자도 그럴 때가 많다고 했지만 , 내 멱살 잡는 소리다. 딱! 내 얘기다.
그를 위해 꼼꼼히 관찰하고 질감 있게 느끼며 깊이 있게 생각을 포기한 때문이란다.
하늘을 자주 보는 습관 때문에 하늘색이 열두 가지도 넘는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이 또한 관심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이분법적이고 제한적이고 극단적인 시종 감정적인 어휘에 내둘렸기 때문이다.
#3
울지 마라, 소리 내 말하라, 글을 쓰라.
그래야 내가 변할 수 있고 상황을 바꿀 수 있다.
내속을 풀어내는 것도 타인을 설득하는 것도 인간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설령 말 때문에 사달날 위험이 크다해도 결국 말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삶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규정되며 이런 상호작용은 주로 말을 통해 확립된다.' -장 폴 사르트르
감정을 어설피 표현하다가 화근이 되어 대체로 체념하게 되었다.
감정을 품위 있게 제어할 수 있는 능력도 결국 어휘력!
내 감정을 적절한 어휘로 표현하는 일도 학습과 강화가 필요할 듯!
#4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완만한 산과 풍요로운 평야지대에 둘러싸인 지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황야'라는 낱말은 미스터리이자 수수께끼였다.
황야는 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데 대개 인생을 상징한다.
집도 떠나고 길도 떠나고 황야를 떠돌아야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거다.
나는 이렇게나 중요한 황야를 상상만 하는 게 갑갑했다.
(중략...)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이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정언처럼
어휘력이란 체험한 낱말의 총합이다.
'인간이 버린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인간의 것일 수 없는 땅'
'거친 들판이라기보다 야성 그대로의 들판'
'인간 없이 온전히 자기네 서사로 무궁한 곳'
저자가 악산과 계곡에 둘러싸인 불모의 땅이 끝 간 데 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스코틀랜드 북부의 하일랜드와 미국의 옐로우스톤에 가보고서야 비로소 상상의 연줄을 붙잡을 수 있었다는 황야의 표현이다.
마지막 문구는 감동이다.
#5
말은 인격이다. 고사성어나 전문용어, 어휘를 많이 안다고 '사람으로서 의 품격'을 갖췄다 할 수 없다. 인격은 기본적인 어휘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대에게 어떠한 의도로 쓰는지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사람을 물건이나 상품으로,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을 도구나 수단으로 취급하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식조차 못 하는 이가 최악이다.
인격은 연출이 불가능하다.
#6
생각이 언어를 바꾸기도 하지만 언어도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어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다. 영혼을 베는 말과 일으키는 말,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사물에 쓰는 말과 사람에 하는 말을 구분하기 위해선
늘 말본새를 점검하고 배움과 습관을 통해 갖춰야 하겠다.
#7
"여자가 능력 있어", "남자치고 세심하네", "가정교육을 잘 받았네", 좋은 대학 나와서 스마트해", "예쁘게 생겼어", "키가 크고 날씬해서 뭘 입어도 잘 어울려", "젊은 사람이 아주 예의 바르고 겸손해", "젊게 사시네요", "나이보다 훨씬 건강하고 젊어 보이세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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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으로 들리는가? 고정관념에 기준한 수직적 평가다.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칭찬으로 착각하기 쉬운 이런 발언은 부모 자식 간에도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칭찬이랍시고 하면 칭찬이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으로 성별이나 외모, 능력 등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고 남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게 된다.
평가가 해악인 이유는 사람을 물건이나 상품, 가축처럼 등급을 매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평가하면서 세를 과시하는 어휘를 쓰지 않도록 조심하자.
#8
그동안 공감을 저절로 생겨나는 감정쯤으로 쉽게 여겼으나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공감은 인간의 타고난 능력이 아닐 수 있다고. 사람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일은 생각보다 상당히 어렵고 오랜 훈련과 철학적 경험을 필요로 한다. 공들여 쌓아야 할 과정을 건너뛰고 그저 표피적으로 좋다, 싫다 등의 반응 주고받기를 공감이라 착각하고 상대 마음도 나 같으려니 추측하는 걸 이해라 오해하는 건 아닐까.
'좋아요'나 '♥'는 공감의 표시가 아니라 반응의 표시며 많이 누른다고 공감능력은 늘지 않는다. 물론 어휘력도 늘지 않는다.
#9
나는 '잘한다'는 평가보다 '고맙다', '기쁘다'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 감동했고, 새로운 선택을 했을 때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익은 격려보다 '나는 너의 앞날이 참 기대된다'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 기운이 났다.
사람은 자신이 타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존재이길 바란다. 그래서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쁘다'는 내용을 가진 말이야말로 최고의 칭찬이다. '네가 참 잘했다'는 말보다 영혼을 크게 일으킬 수 있다.
<적바림> 비교해서 평가하거나 문제를 찾아 비난하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말이다. 쉽게 하는 말은 쉽게 타인의 영혼을 짓누른다. 과정에 공감하고 노력에 감동하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듣는 이의 영혼을 환하게 밝혀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게 해 준다.
주제넘게 말하지 말자. 누구도 남의 인생에 대해 평가할 권리가 없다. 서로를 축하하고 축복할 구실을 찾자. 오늘이 크리스마스 아침인 것처럼. |
3줄 평
읽는 내내 적절한 인용과 적확한 어휘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일주일에 5권 다독을 하고, 30년 이상 글 쓴 내공이 철철 넘친다.
지금 우리가 어휘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소통에 있다.
일상에서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어휘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서,
어휘력을 키우기 위한 마음자세와 기술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과
글 쓰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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