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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

[경주 여행] 도리천에 영원히 잠든 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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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 속에 장사지내도록 하라.”

 

여러 신하들이 그곳이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해서 물으니 왕이 말하였다.

“낭산(狼山) 남쪽이니라.”


그 날이 되어 과연 왕이 붕(崩 :왕이 죽음)하였고

여러 신하들은 왕을 낭산 양지에 장사지냈다.


수십 년이 지난 뒤

문무대왕이 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창건하였다.

불경에 “사천왕천(四天王天)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제야 왕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죽는 날을 미리알고 자신이 묻힐 곳을 유언으로 남겼다는

일화와 함께 뛰어난 지혜와 예지력의 지기삼사(知幾三事)로 유명한

신라 최초의 여성군주였던 선덕여왕의 왕릉은 그동안 세인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가 몇년전 이요원, 엄태웅, 고현정등이 분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새롭게 조명된 후 내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불국사 가는길 대로변에서 500m 떨어진 경주 낭산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선덕왕릉을 찾아가다.

평소에는 어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던 선덕여왕릉이 최근 드라마에 힘입어

주말 아닌 평일에도 임시주차장이 생길 정도로 찾는 이가 많아졌다.

산으로 들어서면 고흑적인 오래된 송림을 만난다.


 조선왕조 왕릉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없는 신라 왕릉은 대부분 이런 형상이다.

제단에는 앞서 참배하고 지나쳐 내려간 50代 일본여성 관광객 서너명이 놓고 간 듯한

생화바구니가 놓여 있다.

 

 이번에는 그의 업적중 최고인 첨성대를 보러 오릉으로 향했다.

가을하늘의 햇살을 받은 잔디의 푸르름이 빛을 발한다.

 

 

 

이곳 역시 평소에 입장료 1,000원도 아까워 홀대 받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다수의 남여노소 내국인 관광객과 그 사이로 좀전에 보았던

일본인 관광객 무리가 내 눈에 들어온다.

 

 

 

천문을 관측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첨성대 위에 태양을 얹어놓고 한 컷 담아본다.


 


 

 

신라 선덕여왕릉(新羅 善德女王陵)

사적 제182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산 79-2

 

이 능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재위 632~647, 김덕만)이 모셔진 곳이다.

경주시 동남쪽에 있는 낭산(狼山)의 남쪽 능선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밑둘레 74m, 높이 6.8m, 자름 24m 되는 이 능의 겉모양은 둥글게 흙을

쌍아 올린 형태이며, 아랫부분에는 능을 보호하기 위한 2~3단의 자연석

석축이 있다.


 

선덕여왕은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첨성대(瞻星臺)를 만들고, 분황사(芬皇寺)

를 창건하였으며, 황룡사(皇龍寺) 9층 목탑을 건립하는 등 신라건축의 금자탑을

이룩하였다.  또 김춘추(金春秋) 김유신(金庾信)과 같은 인물들을 거느리고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내가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忉利天)에

장사지내도록 하라고 하였는데, 여러 신하들이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해서 물으니

왕이 낭산 남쪽이라고 말하였다. 그날에 이르니 왕이 과연 세상을 떠났는데,

여러 신하들이 낭산 양지에 장사 지냈다.

30여 년이 지난 문무대왕(文武大王) 19년(679년)에 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

(四天王寺)를 처음 건립하였다.  불경에 말하기를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므로 그제서야 선덕여왕의 신령하고 성(聖)스러움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경주 낭산(慶州 狼山)

사적 제163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배반동,보문동


 

경주 낭산은 남북으로 길게 누에고치처럼 누워 양쪽에 각각 봉우리를 이루었다.

산허리는 잘록하며 높이는 108m로 그다지 높지 않은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고 있다.

예부터 서라벌의 진산으로 불리며 신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졌다.


 

신라 실성왕(實聖王) 12년(413)에는 구름이 일어 누각같이 보이면서 오랫동안

향기가 피어올랐다.

나라에서는 하늘에서 신령이 내려와 노니는 것으로 여기고, 그 후로는

나무도 베지 못하게 하였다.


 

산자락에는 거문고의 명인 백결(百結) 선생이 살았으며,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이 공부하던 독서당(讀書堂)도 있다.


 

남쪽 능선에는 선덕여왕(善德女王)의 능이 있고, 그 아래쪽에는 호국

사찰로 알려진 신라 향가의 현장 사천왕사터(四天王寺址)가 있다.


 

동북쪽에는 황복사터(皇福寺址)와 삼층석탑이 있으며, 서쪽중턱에는

낭산 마애삼존불(磨崖三尊弗)이 있고, 그 주변에 문무왕의 화장터로

여겨지는 능지탑(陵只塔) 등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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